
저는 MoMA를 처음 접했을 때 그냥 유명한 미술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피카소, 고흐, 달리가 있는 곳. 뉴욕 가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관광 코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이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모아두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MoMA는 무엇이 현대미술인지를 직접 결정해온, 하나의 거대한 기준 그 자체였습니다.
MOMA의 탄생 배경
1928년, 뉴욕 어느 식당에서 점심 식사가 열렸습니다. 자리에 앉은 세 여성은 각각 컬렉터, 갤러리스트, 그리고 록펠러 가문의 안주인이었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가 결국 세계 1위 현대미술관의 씨앗이 됩니다.
당시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아방가르드란 기존 예술의 형식과 관념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실험적 예술 사조를 의미합니다. 파리에서는 1863년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이 열리며 기존 아카데미에서 거부된 작품들이 공개됐고,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예술의 물꼬가 됐습니다. 반면 미국은 1913년 아모리 쇼(Armory Show)가 되어서야 비로소 유럽의 새로운 미술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격차를 직접 체감하고 있던 세 여성은 1929년, 단 1년 만에 미술관을 엽니다. 초기에는 소장품이 부족해 다른 기관에서 작품을 임대해 기획전을 여는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1931년 앙리 마티스 전시가 첫 번째 대규모 기획이었습니다.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130점을 선보인 이 전시는 당시 62세였던 마티스 본인이 직접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35년 반 고흐 회고전에서는 유화 66점과 드로잉 50점,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까지 큐레이션에 포함시키면서 단순 전시를 넘어 예술가의 세계관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이 초기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들이 처음부터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지를 "선택하는 것"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그 선택 자체가 곧 권력이었고, MoMA는 그 권력을 아주 초기부터 의식적으로 행사해왔습니다.
현대미술의 권력 구조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예술을 중립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MoMA는 특정 작가와 사조를 선택하고 큐레이션(curation)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방향 자체를 설계해왔습니다. 여기서 큐레이션이란 단순히 작품을 골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예술이 의미 있는지 판단하고 맥락을 부여하는 편집 행위를 뜻합니다.
1968년 모마가 선보인 전시 <공간 SPACES>는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라는 개념이 처음 제도권 미술관에 진입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설치미술이란 공간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삼아 빛, 소리, 구조물 등을 통해 관객의 경험을 유도하는 예술 형식입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전시에서 "관객이 유일하게 하지 않는 것은 작품을 보는 것"이라는 평을 남겼을 만큼, 전통적 감상 방식을 완전히 흔든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급진적이었던 설치미술은 이제 어느 현대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형식이 됐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퍼포먼스 아트, MoMA와 제휴한 PS1의 실험적 전시들까지, 처음엔 경계를 허물기 위해 등장한 시도들이 결국 MoMA라는 제도 안으로 편입되어 또 다른 권위가 되는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MoMA가 스스로 인정한 이 긴장감은 2013년 출판부가 펴낸 MoMA Highlights에도 담겨 있습니다. "현대미술관은 언제나 기꺼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관이어야 하며,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쇄신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만든 권위를 스스로 의심한다는 선언인데, 이것이 MoMA를 다른 기관과 다르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MoMA가 현대미술을 다루는 방식의 핵심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페인팅·조각, 드로잉·프린팅, 사진, 건축·디자인, 영화, 미디어·퍼포먼스 등 6개 부서로 컬렉션을 세분화해 관리
- 소장품 수집에 그치지 않고 기획전(Curated Exhibition)을 통해 특정 작가와 사조의 의미를 직접 구성
- PS1 현대미술관 제휴를 통해 젊은 예술가의 실험적 작업까지 제도권 안에서 소화
MoMA의 컬렉션 규모와 구성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MoMA 공식 사이트).
예술의 대중화인가, 브랜드화인가
MoMA가 현대미술을 대중화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중화와 브랜드화 사이의 경계가 이 미술관에서 가장 희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MoMA가 1951년 시작한 아트 렌딩 서비스(Art Lending Service)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트 렌딩 서비스란 관객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2~3개월간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 실제 생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한 임대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10년간 약 2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고, 미술관 브랜드를 일상 공간까지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익이었습니다.
이후 MoMA 디자인 스토어는 미술관 굿즈(goods) 판매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굿즈란 미술관의 브랜드와 소장 작품을 활용해 제작한 상품을 의미하는데, MoMA의 경우 단순 기념품을 넘어 디자인 제품 자체로 평가받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이 경험 산업(Experience Economy)의 일부로 자리 잡는 흐름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경험 산업이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특정 장소나 활동을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소비 가치가 되는 산업 구조를 말합니다.
제가 느낀 불편함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오래 머물기보다, 인증 사진을 찍고 디자인 스토어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MoMA에 갔다"는 경험 자체가 소비의 목적이 되는 것이죠. 현대미술이 갈수록 경험 산업의 일부가 되어가는 흐름, 그 흐름을 MoMA가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MoMA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예술가들에게 피난처와 보조금을 제공하고, 참전 용사 미술센터를 열어 1,500명의 재활을 지원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는 문화 기관으로 기능했다는 점은, 브랜드화 비판과 별개로 분명히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현대미술의 제도적 역할과 사회적 기능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미술사 분야의 저명한 학술 플랫폼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출처: JSTOR).
MoMA를 보는 시선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미술의 선교사라고 볼 수도 있고, 예술을 소비재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미술관이 지난 100년 가까이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바꿔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MoMA에 관심이 생겼다면, 단순히 유명 작품 감상에 그치지 말고 전시의 큐레이션 방식 자체를 한 번쯤 의식하며 관람해보시길 권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이 훨씬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고: https://bidpiece.com/Explained/?idx=128761139&bmode=view#google_vig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