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 한복판, 수십 년 된 원단 가게들과 빽빽한 간판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저 은빛 곡선 덩어리. 건물이라기보다 도시 위에 무언가가 내려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질감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내려앉은 DDP 건축의 배경
DDP, 정식 명칭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2007년 서울시가 주최한 국제 공모전을 통해 탄생한 건물입니다. 당시 서울시는 역사적으로 가장 번화한 동대문 일대를 문화 중심지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내세웠고, 그 설계를 이라크계 영국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따냈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2004년 수상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프리츠커 건축상이란 건축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상으로, 매년 살아 있는 건축가 한 명에게만 수여됩니다. 자하 하디드는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스키 점프대, 독일 라이프치히 BMW 중앙 빌딩, 이탈리아 로마의 막시지 국립 21세기 미술관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남긴 그녀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 바로 DDP입니다.
당시 하디드는 오랫동안 "종이 건축가"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녀의 디자인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실제로 지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가 설계한 DDP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정형 건축이란 직선과 규칙적인 반복 구조를 탈피하고, 컴퓨터 알고리즘과 디지털 설계를 통해 구현되는 불규칙한 형태의 건축 방식을 말합니다. 제가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느낀 건 방향마다 전혀 다른 형태가 펼쳐진다는 점이었는데, 그게 바로 비정형 건축의 핵심입니다.

DDP가 만들어내는 공간 체험
DDP 안으로 들어간 첫날, 저는 5분 만에 어느 층에 있는지 잃어버렸습니다. 보통 건물이라면 층마다 다른 마감재나 색상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DDP는 그런 단서가 없습니다. 벽과 천장, 바닥이 하나의 연속된 곡면처럼 이어지고, 계단인지 복도인지도 처음엔 헷갈립니다. 처음엔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그 혼란 자체가 이 공간이 의도한 체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공간이 이렇게 구현될 수 있었던 데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라는 기술이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BIM이란 건물의 물리적·기능적 정보를 디지털로 통합 관리하는 3차원 설계 시스템으로, 2D 도면을 3D로 변환하고 구조·설비·마감 정보를 한 데 묶어 시공 전 가상으로 검증하는 방식입니다. DDP처럼 곡선이 복잡하게 얽힌 건축물에서는 이 기술 없이는 설계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내부에는 기둥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구조가 사용되었습니다. 스페이스 프레임이란 삼각형 또는 다각형 단위를 기하학적으로 연결해 만든 경량 강성 구조체로, 넓은 공간에서 기둥 없이도 무거운 하중을 분산 지지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9미터 높이의 천장을 가진 2,992제곱미터 규모의 아트홀이 탁 트인 개방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안에 서 있었을 때 느낀 건 단순히 "넓다"가 아니라, 공간이 사람을 흡수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DDP에서 경험해볼 만한 공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선형 복도가 감싸는 거대한 원통형 갤러리: 어느 방향에서 봐도 다른 인상을 줍니다
- 기둥 없이 9미터 천장이 열린 아트홀: 공연이나 전시 모두에서 압도적인 개방감을 제공합니다
- 4층과 지하층을 잇는 긴 나선형 계단: 이동 자체가 조형적 경험이 됩니다
- 외부 잔디 언덕과 이어지는 옥상 공원: 건물과 조경이 경계 없이 이어지는 구간입니다
건설 과정이 만들어낸 기술 혁신
DDP의 외관을 덮고 있는 알루미늄 패널은 총 45,133장입니다. 그리고 그 중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외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널마다 미세하게 곡률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패널을 어떻게 만드느냐였습니다. 처음에는 영국과 독일의 제조업체에 의뢰했지만, 두 곳 모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면 완성에 20년은 걸린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엔지니어들이 직접 나섰고, 최첨단 성형기와 절단기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만 6건의 특허가 출원되었습니다. 결국 DDP는 건물을 짓기 위해 건설 기술 자체를 새로 발명해야 했던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
총 건설비는 5,000억 원, 지하 3층 지상 4층, 연면적 85,320제곱미터 규모의 이 건물은 단순히 디자인적으로 앞선 것이 아니라, 시공 방식과 산업 기술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건축 전문 매체들이 DDP를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닌 건설 기술의 이정표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 공식 사이트).
한편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과거 동대문운동장 터였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역사적 장소 위에 전혀 다른 시간대의 건축물이 올라선 것인데, 그 충돌 자체가 DDP를 논쟁적인 건물로 만든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서울 도시 건축의 흐름 속에서 DDP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서울시 공식 도시건축 아카이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공공건축 포털).
DDP는 분명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건물은 아닙니다. 저도 이 공간에서 '머무름'보다는 '관람'의 감각이 더 강하게 온다는 점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대문이라는 복잡하고 오래된 도시 조직 안에 이 건물이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서울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큰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면 직접 가보시길 권합니다. 외관을 한 바퀴 천천히 돌고, 안으로 들어가 길을 잃어보는 것. 그게 DDP를 제대로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korea.net/NewsFocus/People/view?articleId=118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