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지를 고를 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보면 반쯤은 기대하고, 반쯤은 의심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셰두바에 들어선 '잃어버린 슈테틀(The Lost Shtetl)' 박물관은 그 수식어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세계적 건축·디자인상인 프릭스 베르사유(Prix Versailles)가 선정한 2026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7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곳인데, 막상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아름다움과 가장 거리가 먼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슈테틀 박물관의 건축 디자인,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공간
이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핀란드의 라이너 마흘라마키입니다. 그는 슈테틀(Shtetl), 즉 동유럽 일대에 존재했던 유대인 소규모 마을의 실루엣을 건물 전체의 형태적 언어로 삼았습니다. 건물의 부피와 지붕선이 작은 마을을 닮았고, 외관은 주변 자연 경관과 경계 없이 어우러집니다. 프릭스 베르사유 심사위원단이 이 건축을 "신기루 같다"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늘과 빛의 변화에 따라 건물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제가 직접 사진을 통해 접했을 때도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프릭스 베르사유란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건축과 디자인이 현대 문화유산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를 평가하는 국제 어워드로, 매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발트 3국에서 이 목록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건물이 단순히 지역적 맥락을 넘어섰음을 보여줍니다(출처: Prix Versailles 공식 사이트).
조경 설계는 에네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Enea Landscape Architecture)가 맡았으며, 박물관 인근에 조성된 메모리 파크(Memory Park)가 건물의 추모적 서사를 야외로 확장합니다. 메모리 파크란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니라, 사라진 공동체에 대한 살아있는 추모의 상징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조경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박물관이 iF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 실내 건축 부문과 예술·문화 전시 및 설치 부문에서도 수상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iF 디자인 어워드란 독일에서 시작된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상으로, 제품·건축·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디자인을 선정합니다. 건축 외관만이 아니라 내부 전시 방식 자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공간이 사라진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 박물관이 여느 역사 박물관과 다르다는 말이 많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을 걸으며 상실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곳은 역사 아카이브보다 감각적 설치물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하고요.
각 공간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된 주택처럼 설계되었습니다. 셰두바라는 실제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전형적인 리투아니아 유대인 가족의 일상, 전통,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 접근은 내러티브 건축(Narrative Architecture)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건축이란 공간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적 매개체로 기능하는 설계 방식으로, 건물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유도하고 기억의 밀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됩니다.
욜란타 미쿠테 박사(박물관 교육부 부장)는 "이러한 인정은 박물관의 건축, 전시 방식, 그리고 박물관이 전하는 이야기가 더 넓은 세계적 맥락에서 이해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평가가 나오는 박물관일수록, 실제로 방문했을 때 설명문보다 공간의 분위기가 먼저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 등재 기준에서도 강조하듯, 기억의 보존은 문서 자료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공간적·감각적 경험이 함께할 때 기억은 비로소 살아남습니다(출처: UNESCO Memory of the World Programme). 이 박물관이 슈테틀의 흔적을 단순 기록이 아닌 공간의 감각으로 남기려 한다는 점에서, 그 시도 자체는 의미 있다고 봅니다.
이 박물관이 짧은 기간 내에 거둔 주요 국제적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릭스 베르사유 2026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7곳 선정 (발트 3국 최초)
- iF 디자인 어워드 실내 건축 부문 수상
- iF 디자인 어워드 예술·문화 전시 및 설치 부문 수상
- 개관 후 첫 6개월간 약 47,000명의 방문객 유치 (리투아니아, 미국, 이스라엘, 호주 등)
추모 공간은 어디까지 소비될 수 있을까
솔직히 이 부분이 제게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불편함이 생깁니다. 비극의 기억을 담은 공간에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얹히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이죠.
이런 현상을 두고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역사적 비극이나 재난의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 행태를 말하는데, 최근에는 이것이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감각적 경험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건축이 너무 아름답고 시적으로 다가올수록, 역사적 비극의 무게가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 희미해질 위험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는 이유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감각적으로 잘 설계된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기 위해서인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 이 박물관의 가장 복잡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공간의 설계 과정을 살펴보니 그 의도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유스에이드 재단(YouthAid Foundation)이 10년 이상에 걸쳐, 8개국 30개 이상의 기업과 협력하여 만든 박물관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단기적 관광 콘텐츠로 기획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공간의 형태로 붙잡아 두려는 긴 싸움의 결과라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어쩌면 기억은 문장보다도, 어떤 풍경과 빛, 걸음의 감각 속에서 더 오래 남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박물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셰두바를 직접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개관 첫 해에는 전시 관람과 전문 가이드 투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사전 등록을 해두시는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