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구정로데오역 출구를 나서면 늘 느끼는 감각이 있습니다. 화려하지만 어딘가 단절된 느낌, 걷고 싶은 거리인데 걷기가 불편한 역설. 그런 동네에 토마스 헤더윅 설계의 '쌍둥이 모래시계' 건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설레기보다 먼저 "과연 이게 거리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2025년 5월 압구정 갤러리아 서관·동관 건립 심의를 통과시켰고, 이제 그 질문이 현실이 될 차례입니다.
압구정 갤러리아, 상업 건축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압구정 갤러리아 하면 많은 분들이 그 특유의 불투명 외벽을 떠올리실 겁니다. 저도 처음 그 건물 앞에 섰을 때,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매스(mass, 건축에서 건물의 덩어리나 부피를 뜻하는 용어)가 오히려 '럭셔리함'을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이제 완전히 뒤집힙니다.
이번 재건축의 핵심은 파사드(façade) 디자인의 전환입니다. 파사드란 건물의 정면 외벽을 뜻하는 건축 용어로, 거리에서 보이는 건물의 첫인상 전체를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기존 갤러리아가 폐쇄적인 파사드로 내부를 감췄다면, 새 건물은 유리 파사드를 적용한 모래시계 형상 두 동이 나란히 서는 구조로 바뀝니다. 이 형태가 단순한 조형 실험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위아래로 오므라들었다 벌어지는 모래시계 실루엣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수직으로 끌어올리는데, 이는 압구정로데오 특유의 과시적 소비 문화와 꽤 정직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중외피 시스템의 도입입니다. 이중외피 시스템이란 건물 외벽을 두 겹으로 구성하여 그 사이 공기층이 단열과 차음 역할을 동시에 하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태양광, 수열,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와 결합해 제로에너지 건축 수준의 친환경 성능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단순히 보기 좋은 건물을 넘어 운영 측면에서도 이전 세대 상업 건축과 분명히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출처: 서울시 도시건축 디자인혁신 사업).
헤더윅의 '도시 가구' 설계, 서울에서도 통할까
토마스 헤더윅을 처음 알게 된 건 뉴욕 허드슨 야드의 베슬(The Vessel)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구조물을 처음 봤을 때, 이게 건물인지 조각인지 계단인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저는 당시 "사람이 올라가게 만든 랜드마크"라는 개념 자체가 신선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헤더윅이 건축을 대하는 방식의 핵심입니다.
그는 건물을 고정된 박스가 아니라 도시 가구(Urban Furniture)처럼 다룹니다. 도시 가구란 벤치, 가로등처럼 도시 공간에 배치되어 사람들이 쉬고 머물고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요소를 뜻하는데, 헤더윅은 건물 전체를 그런 척도로 설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압구정 갤러리아 역시 지하 통합 광장부터 실내 개방 공간, 중층 정원, 옥상 정원까지 수직으로 연결되는 입체적 보행 동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그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실제로 완공 후 가장 임팩트 있을 부분은 아마 이 보행 동선의 경험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지하에서 옥상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는, 기존 압구정 일대에서 보행자가 느꼈던 단절감을 공간적으로 해소하려는 시도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베슬은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초반에는 "도시 경험의 혁신"으로 소개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포토 오브제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형태적 임팩트가 강한 건축물이 공통적으로 겪는 위험입니다. 공간 경험보다 "여기서 사진 찍었다"는 기록이 공간을 압도하게 되는 순간, 건물의 원래 설계 의도는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압구정 갤러리아가 그 함정을 피하려면, 외관만큼 내부 프로그램의 밀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재건축에서 저는 다음 세 가지를 가장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 지하 문화·이벤트 공간이 실제로 어떤 콘텐츠로 채워지는가
- 중층·옥상 정원이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구조로 실현되는가
- 모래시계 파사드의 시각적 상징성이 내부 공간 경험을 앞서지 않는가
공공성이라는 이름의 럭셔리, 열린 공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표현, 요즘 대형 개발 프로젝트 보도에서 얼마나 자주 보셨습니까? 저는 이 문장이 나올 때마다 솔직히 조금 긴장하게 됩니다. 직접 여러 공간을 다니며 느낀 건데, 이 표현은 많은 경우 공공성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랜드 경험을 위한 무대가 되는 구조입니다.
역세권 활성화 사업의 공공 기여 방식을 보면, 공개 공지(公開空地)나 공공 보행 통로 확보가 사업 인허가의 조건으로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개 공지란 건물 대지 내에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확보하는 오픈 스페이스를 뜻합니다. 법적 의무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실제 이용률이 낮거나, 소비 동선에 묶여 진정한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출처: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포털).
압구정이라는 맥락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열린 광장과 옥상 정원이 조성된다고 해도, 그 공간이 압구정 특유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코드 안에서 소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열려 있어도 분위기가 닫혀 있는 상황, 저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몇몇 프리미엄 복합 쇼핑몰에서 해봤습니다. 잔디밭과 나무가 있는데 앉기가 어색한 그런 공간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가 분명히 의미 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국내 백화점 건축이 오랫동안 효율 중심의 박스형 매스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축 자체를 도시 경험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는 서울 상업 건축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임은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얼마나 큰 매장인가" 경쟁에서 "어떤 도시 장면을 만드는가"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그 흐름 자체는 긍정적으로 읽힙니다.
결국 압구정 갤러리아의 완성도는 완공 후에 판단해야 합니다. 형태가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이 만들어지는지가 이 건물이 진짜 도시 장치가 될지, 거대한 포토 오브제로 남을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완공 후 직접 가서 지하 광장부터 옥상까지 걸어올라 보고 싶습니다. 그때 다시 솔직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