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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 EX:PACE | 커튼 파사드, 정적인 파동, 도시 여백

by 혜이니o 2026. 5. 29.

© Joonhwan Yoon

 

은행 건물이 천처럼 흔들릴 수 있을까요? 명동 지하철역 근처를 걷다가 저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신한 EX:PACE를 처음 마주한 순간, "은행이구나"보다 "저게 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차갑고 단단해야 할 금융 건물이 도시 한복판에서 유리 커튼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신한 EX:PACE의 커튼 파사드, 은행 건축의 문법을 뒤집다

대부분의 은행 건축은 신뢰와 안정을 강조하기 위해 묵직한 재료와 직선을 선호합니다. 화강석, 폐쇄적인 입면, 두꺼운 기둥. 이 모든 것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언어들입니다. 그런데 신한 EX:PACE는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핵심은 커튼월(curtain wall)에 있습니다. 커튼월이란 건물의 구조체와 분리된 비내력 외벽 시스템으로, 말 그대로 건물 바깥에 얇은 막을 드리우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는 그 커튼월이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드레이프', 즉 천을 흘러내리듯 두른 행위 자체를 은유합니다. 10m 폭 도로 쪽은 3층 높이, 6m 도로 쪽은 1층 높이로 각각 달리 설계되어 마치 커튼의 주름이 불균등하게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파사드(facade)란 건물의 정면 외관을 뜻하는데, 보통은 건물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얼굴'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의 파사드는 얼굴이라기보다 피부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주변 풍경을 반사하고 흡수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낮에 걸으면 표면 위로 사람들의 움직임과 구름이 스쳐 지나가고, 밤에는 내부 조명이 안개처럼 새어나옵니다. 건물이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장면처럼 보이는 겁니다.

건물 외관은 41.52mm 두께의 단열 구조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로이(Low-E) 코팅이 적용되었습니다. 로이 코팅이란 유리 표면에 금속 산화물을 얇게 입혀 복사열을 차단하는 기술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도 빛의 투과율을 유지하는 데 쓰입니다. 여기에 도트 프릿(dot frit)이라는 세라믹 점묘 코팅이 더해집니다. 도트 프릿이란 유리 표면에 미세한 점들을 인쇄하듯 코팅하여 빛의 산란과 차광 효과를 동시에 얻는 기법입니다. 점의 직경이 면마다 다르게 설계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표면의 밀도감이 달리 느껴집니다. 차갑고 딱딱한 유리에 면직물 같은 질감을 입히는 방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 경험상 이 질감의 차이는 실제로 서 있을 때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14가지 종류의 곡면 유리 모듈 320개가 반복 배치되어 있어서, 걷는 속도에 따라 파사드가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보입니다. 설계 팀이 이것을 "정적인 파동"이라고 부른 이유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했습니다.

신한 EX:PACE 파사드의 핵심 기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커튼월 프레임: 고강도 강철 멀리언(폭 45mm, 길이 150mm)을 벤딩 방식으로 제작
  • 유리 모듈: 14가지 곡면 유형, 총 320개 모듈 구성
  • 로이(Low-E) 코팅: 복사열 차단 및 단열 성능 확보
  • 도트 프릿 코팅: 차광과 표면 질감 동시 구현
  • 하단 마감재: 초고광택 스테인리스 스틸로 반사 효과 추가

정적인 파동이 만드는 도시 여백

저는 이 건물을 보면서 설계 설명에 보로미니가 등장한 이유를 금방 납득했습니다. 17세기 로마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가 설계한 산 카를로 콰트로 폰타네 교회는 좁은 도심 교차로에 자리하면서도 오목한 입면과 분수를 통해 사람들이 잠시 멈출 수 있는 호흡을 만들었습니다. EX:PACE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명동은 솔직히 굉장히 피로한 도시입니다. 간판이 겹치고, 사람이 밀리고, 걷는 속도조차 빠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을 때, 명동 8가길과 명동 10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이 건물의 모서리가 안쪽으로 후퇴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목하게 들어간 유리벽, 거울처럼 반사되는 캐노피 천장, 그리고 벤치 몇 개. 거창한 광장은 아니지만, 딱 한 호흡 멈출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이건 단순한 디자인 제스처가 아니라 도시를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캐노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초고광택 스테인리스 스틸 천장이 최대 76cm 폭의 파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소재는 정반사(specular reflection) 특성을 갖고 있어서, 쉽게 말해 거울처럼 주변을 왜곡 없이 되비춥니다. 명동 거리의 움직임이 천장에 그대로 흘러다니는 광경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건물을 보면서 한 가지 불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다듬어진 표면은 때로 현실의 거칠음을 지워버립니다. 수십 년간 수공예품 상인들이 모이던 명동, 좁은 골목의 생활감과 밀도감. 그 위에 세련된 유리 커튼이 드리워지면서 장소가 점점 브랜드 이미지로 재편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동시에 '연출된 장면'으로 바꾸기도 한다는 이중성입니다.

건축계에서는 이런 경향을 스펙터클 건축(spectacle architectur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펙터클 건축이란 시각적 효과와 이미지 생산에 집중하여, 실제 물성보다 미디어 소비와 경험 마케팅에 최적화된 건축을 가리킵니다. EX:PACE가 완전히 그 범주에 속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콘크리트의 무게감이나 벽돌의 촉감처럼 재료의 존재감보다 빛과 반사의 인상이 더 강하게 기억된다는 점에서 그 경계 어딘가에 위치한 건 사실입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건축물의 유리 커튼월 적용 비율은 상업용 신축 건물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도심 상업 시설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표면으로 구현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한국건축가협회 역시 최근 도심 상업 건축의 흐름을 분석하며 "물성보다 이미지, 구조보다 표면"을 키워드로 꼽은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건축가협회).

결국 EX:PACE는 그 시대 흐름을 영리하게 읽은 건물입니다. 브랜드를 크게 드러내기보다 분위기를 남깁니다. 사람들은 정확한 입면 형태보다 "거기서 느꼈던 빛과 부드러운 표면감"을 기억합니다. 그것이 이 건물이 노린 것이고, 실제로 그 목표는 달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EX:PACE를 떠올리면 저는 여전히 정확한 외관보다 그 표면 위에서 흔들리던 명동 거리의 반사가 먼저 생각납니다. 단단한 유리인데 천처럼 보이고, 고정된 건물인데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건축이 얼마나 부드러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는 느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명동을 걸을 기회가 있다면 교차로 모서리에서 한 번 멈춰 서보시길 권합니다. 캐노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순간, 이 건물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바로 느껴질 겁니다.


참고: https://archello.com/project/shinhan-expace-facade-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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