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시드니 항구 한쪽에 파도 모양의 거대한 지붕이 들어섰습니다. 새로 개장한 시드니 피쉬마켓(Sydney Fish Market) 이야기입니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수산시장 맞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예상했던 시장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거든요.
시드니 피쉬마켓의 물결형 지붕과 워터프론트 건축
수산시장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바닥에 고인 물, 짙은 비린내, 좁은 통로를 빠르게 지나다니는 상인들. 대부분 그런 그림을 떠올리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드니 피쉬마켓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당황했습니다. 이 건물은 그 모든 감각을 의도적으로 걷어낸 것처럼 보였거든요.
덴마크 건축사무소 3XN이 설계를 총괄한 이 건물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단연 물결 형태의 대형 루프 캐노피(roof canopy)입니다. 여기서 루프 캐노피란 건물 전체를 덮는 대형 지붕 덮개로,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규정하는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이 지붕은 파도의 흐름과 물고기 비늘을 형태적으로 참조해 설계되었고, 블랙와틀 베이(Blackwattle Bay)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즉시 인지되는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단순히 예쁜 지붕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이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한눈에 알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내부는 반개방형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자연채광과 환기를 극대화해 밀폐된 느낌이 거의 없고, 넓게 트인 동선 덕분에 걸어 다니다 보면 시장이라기보다 워터프론트(waterfront) 문화시설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을 것 같습니다. 워터프론트란 항구나 강변에 조성된 수변 공공 공간 및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최근 전 세계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 핵심 키워드로 자주 등장합니다. 단순히 기능 중심으로 지어졌던 20세기 중반 창고 건물을 시장으로 써온 구건물과 비교하면, 설계 철학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셈입니다.
새 시드니 피쉬마켓의 핵심 설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물결 형태의 연속적 대형 루프 캐노피로 단일한 시각적 정체성 확보
- 반개방형 구조와 자연환기로 쾌적한 체류 환경 구현
- 도매 수산시장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리테일·다이닝 공간을 통합한 복합 구성
- 계단형 트리뷴(stepped tribune)을 활용한 수변 광장과의 자연스러운 연결
여기서 트리뷴(tribune)이란 계단식으로 설계된 다목적 스탠드형 공간으로, 좌석 기능과 이동 기능, 임시 이벤트 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건축 요소입니다. 이 공간이 건물과 항구 사이를 이어주는 완충 구간으로 작동하면서, 방문자의 시선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수변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합니다.
공공성이라는 설계 의도, 그 뒤에 숨은 이야기
제가 이 건물을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였습니다. 공공 접근성을 높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새로 조성된 수변 산책로는 로젤 베이(Rozelle Bay)에서 울루물루(Woolloomooloo)까지 이어지는 약 15km 길이의 포쇼어 워크(foreshore walk) 네트워크와 연결됩니다. 6,000㎡ 이상의 개방 공간도 새롭게 조성됐고, 시장 양 끝단에 배치된 광장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입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설계에는 시각적 투과성(visual permeability)이라는 개념이 핵심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각적 투과성이란 공간 안에서 내부와 외부, 또는 서로 다른 기능 영역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연결되어 보이도록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도매 시장의 실제 작업 현장은 들어갈 수 없지만 유리나 통로를 통해 그 현장을 눈으로 볼 수는 있게 해두는 구조입니다. 위생과 안전, 운영 효율을 지키면서도 방문자에게 현장감을 주는 영리한 전략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저는 약간 걸리는게 있습니다. 시장 특유의 에너지라는 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물 냄새, 새벽 경매의 긴장감, 상인들이 주고받는 날카로운 목소리 같은 것들이 뒤섞여야 시장다운 분위기가 납니다. 현대적인 재개발은 이런 요소들을 점점 더 통제 가능한 풍경으로 정돈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방문자는 "로컬 시장을 경험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잘 디자인된 도시 콘텐츠 안에서 그 경험을 소비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공공 건축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워터프론트 재생 사업이 공공성보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출처: ArchDaily).
도시재생, 건물 하나가 도시 생태계와 연결되는 방식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시장 리모델링이 아닌 이유는, 건축이 도시 인프라 전체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입구 조경에는 바이오필트레이션(biofiltration) 시스템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바이오필트레이션이란 토양과 식물, 미생물의 자연적인 여과 작용을 이용해 빗물(우수)을 정화하고 관리하는 친환경 기술입니다. 단순히 조경이 예쁜 게 아니라, 부지 전체의 생태적 순환 구조를 설계 단계부터 반영한 것입니다.
해양 환경에 대한 배려도 꽤 구체적입니다. 공사 기간 항구에 설치된 씨빈(Seabin) 유닛은 수십억 리터의 해수를 여과하고 수백만 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포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씨빈이란 항구나 마리나에 설치하는 해양 쓰레기 수거 장치로, 펌프를 이용해 해수면의 부유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을 흡입해 포집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방파제에는 산호 패널과 어류용 인조 서식처까지 설치해 수변 생물다양성을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공공 건축이 단순히 외형 경쟁을 넘어 환경적 책임까지 설계 범위에 포함하는 흐름은 최근 국제 건축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건축가연맹(UIA)도 지속가능한 도시 건축을 핵심 의제로 다루며 탄소 중립, 생태 복원, 공공 접근성의 통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UIA). 새 시드니 피쉬마켓은 이 흐름을 실제 건물로 구현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 건물이 "완벽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도매 수산시장의 현장성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그 현장이 점점 더 관람 대상으로 박제되어가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도시가 원하는 시장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리고 공공 건축이 어디까지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이 건물이 꽤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 시드니 피쉬마켓이 앞으로 어떻게 자리잡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블랙와틀 베이 재생 사업 전체가 완공된 뒤 이 건물이 도시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관점이 될 것 같습니다. 수산시장을 핑계로 수변을 걸어보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가볼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