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을 처음 접했을 때 "게리 건축의 축소판"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의 그 압도적인 스케일을 떠올리며 방문했다가, 예상보다 훨씬 작은 건물 앞에서 잠깐 멈췄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 건물이 단순한 "게리 스타일의 건물"이 아니라, 게리 자신이 자기 건축 언어를 처음 발견한 장소라는 사실을요.
프랭크 게리의 변곡점이 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일반적으로 프랭크 게리 하면 곡선과 금속 패널로 뒤덮인 거대한 조각 같은 건물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 건물의 진짜 성격은 "해체주의(Deconstructivism)"와 조형적 곡선이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해체주의란 건축에서 단일하고 통합된 형태 대신 분절되고 충돌하는 볼륨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잘 정리된 형태"를 일부러 흐트러뜨리는 방식입니다. 게리의 초기 작업은 철망과 각진 형태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해체주의였는데, 비트라에서는 거기에 처음으로 유기적인 곡선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건물 외부를 천천히 돌아보면, 흰 석고로 마감된 경사진 곡선 볼륨과 아연 합금판으로 덮인 직선적 매스가 서로 얕은 각도로 교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연 합금판이란 산화 반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이 회색빛 광택으로 변하는 금속 마감재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재료와 형태가 한 건물 안에 공존한다는 게, 사실 게리 입장에서는 꽤 실험적인 선택이었을 겁니다.
제가 직접 돌아다니며 느낀 건, 몸이 작은 건물 안에 있는데 시선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흔들린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전시를 보러 갔는데 어느 순간 건물 자체를 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헤체주의와 곡선이 충돌하는 디자인 공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 건물이 "디자인 박물관"이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 건축은 전시물을 위한 중립적인 배경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건물에서 그 전제가 계속 흔들리는 걸 경험했습니다.
내부 공간은 4개의 전시 갤러리, 연구 공간, 카페테리아, 다목적실로 구성되어 있고, 두 층 사이는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됩니다. 천장의 십자형 채광 개구부(Skylight)가 전시 공간 전체에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구조인데, 여기서 채광 개구부란 지붕이나 벽 상단에 뚫린 개구를 통해 자연광을 실내로 유입시키는 건축 장치를 말합니다. 그 빛이 흰 곡선 벽면에 떨어지는 순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안에 놓인 의자보다 벽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부분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지점입니다. 비트라 뮤지엄이 보유한 소장품은 현재 6,000점 이상으로, 초기의 의자 200여 점에서 시작해 식기류, 가전제품, 건축 프로토타입까지 확장된 컬렉션입니다(출처: Vitra Design Museum). 그 방대한 컬렉션을 담는 공간이 스스로 너무 강한 오브제가 되어버리면, 전시와 공간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제 경험상 실제로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비트라 캠퍼스 전체로 시선을 넓히면, 이 문제는 더 구조적으로 보입니다. 1981년 화재 이후 비트라는 타다오 안도,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 SANAA 등에게 캠퍼스 재건을 의뢰하며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 컬렉션을 한 곳에 모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공장 재건이 아니라 "디자인 문화 플랫폼"으로 브랜드를 재정의하는 전략이었고, 그 결과 비트라 캠퍼스는 건축 자체보다 "브랜드가 건축을 사용하는 방식"이 더 인상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건물을 보는 건지, 건축계 명함 모음집을 순례하는 건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비트라 캠퍼스에서 주목할 만한 건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프랭크 게리, 1989) — 해체주의와 곡선이 처음 만나는 지점
- 비트라 소방서 (자하 하디드, 1993) — 하디드의 첫 번째 실현된 공공 건물
- 컨퍼런스 파빌리온 (타다오 안도, 1993) —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광의 교과서
- 비트라 하우스 (헤르조그 & 드 뫼롱, 2010) — 쇼룸과 주거 형태가 결합된 적층 구조
- SANAA 팩토리 (SANAA, 2012) — 투명성과 수평성으로 공장 건물의 문법을 바꾼 사례
스타 건축가 소비 구조, 그래도 이 건물이 살아 있는 이유
비트라 캠퍼스를 비판적으로 보면, 이곳은 "스타 아키텍트(Starchitect)" 현상의 상징적 무대이기도 합니다. 스타 아키텍트란 건축가 개인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건물의 공간적 맥락보다 서명 가치로 소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트라는 그 흐름을 가장 일찍, 가장 의식적으로 활용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게리의 건물이 늘 그렇듯, 형태의 에너지가 강해서 사람에 따라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테시마 미술관처럼 감각을 비워내는 건축과 정반대로, 비트라 뮤지엄은 형태의 움직임으로 계속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건축 비평가 폴 헤이어는 이 건물의 외부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의 소용돌이"로 묘사했는데, 저는 그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건물이 다르게 보입니다. 어느 각도에서는 곡선이 앞으로 밀려오는 것 같고, 다른 각도에서는 볼륨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건축 이론에서 "매스(Mass)"란 건물의 3차원적 부피감과 시각적 무게를 의미합니다. 비트라 뮤지엄은 743제곱미터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향으로 충돌하는 매스 덕분에 실제보다 크고 복잡하게 인식됩니다. 제가 처음 "작다"고 느꼈다가 금방 그 생각이 사라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건물이 1989년 개관 이후 30년 넘게 건축계의 주요 레퍼런스로 남아 있는 건, 완성도보다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리 자신도 "스케치에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건물에 처음 적용한 것이 바로 이 박물관이었다"고 말했습니다(출처: ArchDaily). 완성형 아이콘이 아니라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담긴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완벽하게 정리된 건축은 금방 익숙해지는데, 비트라는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예쁘다"보다 "계속 생각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건물입니다.
비트라 캠퍼스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게리의 박물관 하나만 보고 나오기보다 캠퍼스 전체를 걸으며 건축가마다 얼마나 다른 언어를 쓰는지 비교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비트라 뮤지엄이 왜 그 출발점에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참고: https://www.archdaily.com/211010/ad-classics-vitra-design-museum-and-factory-frank-gehry